죽어가는 도시를 살린 작고 흰 공

골프가 언제부터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행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400년경으로 추정된다.

1457년에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2세가 사람들이 골프에 빠져 전쟁에 필요한 활 쏘기 연습을 등한시 한다는 이유로 골프를 금지 시켰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골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세인트 앤드루스 지역 사람들의 골프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빨리 이곳에서 골프가 해금 되었다.

세인트 앤드루스가 과거 카톨릭 성지였다고 해서 자동으로 골프 성지가 된 것은 아니다.

동해안 도시 중 골프 성지로 가장 유망해 보인 곳은 수도인 애든버러 인근의 링크스 들이었다.  특히 리스 링크스는 겨울철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모이는 아지트 였다. 그러나 애든버러의 링크스는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가 팽창하면서 개발 압력에 시달렸고,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시민들은 비싼 도심의 땅에서 귀족들이 노는 모습을 곱게 보지 않았다.  그들은 “링크스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여러 이유로 애든버러의 대표적인 링크스인 리스는 결국 공원이 되었다.

반면 세인트 앤드루스는 작은 도시여서 개발 압력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데다 시민들의 평등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따라서 오래된 코스가 그대로 남아 있는 세인트 앤드루스는 정통성을 주잘 할 수 있었다.

세인트 앤드루스  골퍼들은 클럽을 만들고 에든버러 사람들이 만든 룰을 베낀 규칙을 내놓았고, 왕이 수여하는 ‘로열’ 칭호도 가장 먼저 받은 것도 에든버러 쪽이다.

1800년대 초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 모두 7개의 클럽이 있었는데 그중 에든버러 북쪽에 있는 퍼스의 골프협회가 왕을 졸라 로얄 작위를 받게된다.

여기서 세인트 앤드루스 클럽 멤버이자 왕실과 관계가 깊었던 실력자 머레이 벨쉬스 대령은 윌리엄 왕에게 편지를 보내 “오래된 도시의 권위를 지켜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윌리엄 왕은 세인트 앤드루스 클럽의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로열 칭호는 물론 세인트 앤드루스의 전통을 인정해 ‘에이션트’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세인트 앤드루스의 로열&에이션트클럽, 즉 R&A가 이때 출현한 것이다.

세인트 앤드루스가 골프의 수도가 된것은 전반적으로 가장 뛰어난 골퍼들이 나왔고 골프를 이해하는수준이 가장 높았다.  다른 명문 클럽들은 골프가 클럽의 여러 스포츠중 일부분 이었지만 세인트 앤드루스는 골프가 가장 대표적인 스포츠 였다는 점도 반영이 된것이다.

현재 R&A 는 미국과 멕시코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골프 규칙과 클럽 디자인 등에 대한 마지막 결정을 할 수 있는 기관이 되었다.

디 오픈 챔피언십을 치를 기회를 가져온 것도 세인트 엔드루스의 성과를 드높였다.  1860년에 프레스트윅 클럽이 만든 디 오픈 챔피언십은 적자에 허덕였는데 1920년 R&A 가  대승적으로 개최권을 가지게 되었고,  TV 시대가 열리자 디 오픈 챔피언십은 중계권료 등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스포츠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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